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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죽음
 

 후회 없는 죽음

                                                                글 기독간호대학    조 00 학생


죽음?  죽음에 대해서 더욱이 나의 죽음에 대해선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각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이 될 것 같다.  얼마 전 호스피스 병동 오리엔테이션 때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학생은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나는 대답했다.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 죽음에 대해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무섭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아주 부정적인 생각들뿐이다. 단 한 번도 아름답게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미화시키려고 노력 해 본적도 없다. 왜일까? 아마도 여러 매체들과 내가 보았던 죽음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아쉬움이 가득한 후회스러운 죽음뿐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런 죽음들을 보며 인상 찌푸려야했고 우울해진 내 자신을 위로하려 애써야 했다.


 내 나이 21살. 나의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기 이른 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한 번도 나의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 보지 않았기에 막연히 죽음이란 것을 정리 하려고 하니 나는 너무 막막한 생각이 든다.

 어떨까?  막연하게 죽는 순간이 오면 숨이 가쁘고 영화에서 본 것 같이 행복하고 소중했던 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갈까?  또  내가 죽는 순간에 영혼이 내 몸과 분리되어 유체 이탈을 할까?

 내가 어렸을 적부터 죽음이란 아주 무서운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이유는 내게 가장 가까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았으며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내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것은 나에게 미화 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전인치유병동 실습 5일째가 되는 오늘, 나의 그 사고방식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호스피스 병동을 생각할 때는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일 것 같았는데, 병동 입구에는 기분 좋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간호사 데스크엔 다른 병원에서 볼 수 없었던 커튼이 있고, 전체적인 병동 분위기가 병원 같지 않고 정말 화목해 보였다. 그리고 인상 깊은 것이 전에 계셨던 환자들의 모습으로 보이는 게시판의 사진들이,  이곳이 그렇게 우울한 곳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이렇게 웃을 수 있구나.........’


 5일 동안 실습을 하면서, 나는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갑상선 암 때문에 투병 중이 신데도 불구하고 밝은 표정과 특유의 귀여우신(?) 외모로 나의 관심을 사로 잡으셨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학생 신분인 나로서는 아픈 환자들의 통증을 조절해 줄 수도, 그들에게 이론적인 부분에서 통증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저 환자 옆에서 이야기해드리고 재미있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간호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정말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나를 마치 손녀딸처럼 대해주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그런 좋으신 할머니를 보며,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죽음에 대해 조금 관대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죽음이란 것은 누구나 모두 거치는 과정이니까......


 실습을 하면 할수록 환자의 고통과 죽음을 보며, 죽음이 마냥 무섭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어떤 준비과정이고 하나의 관례이자 거쳐야 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기도하고....  감히 정의 내릴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번 실습을 하면서 죽음의 5단계라는 개념을 배웠다. 퀴블러 로스라는 학자가 발표한 이론인데 죽음에 대한 환자의 심리상태를 5가지로 나누었다. 1단계부터 5단계까지 환자가 부정의 단계에 처하여 있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자신의 질병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을 하도록 도와야 하는 부정단계와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노를 표현하는 단계, 불가피한 사실을 연기하려는 시도로 착실한 행동을 하는 타협단계, 환자가 자신의 병을 더 부인하지 못하게 되고 증상이 더 악화되는 우울단계, 지치고 쇠약해지며 감정의 공백기를 갖는 수용 순으로 나열했다. 내가 보기엔 죽음의 5단계 중 우리 병동의 환자들은 타협, 우울 또는 수용의 단계에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자기 상태를 알고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음에 처한다면 저 심리 단계 중 1단계인 부정의 단계에 처했을 때 현실을 믿을 수 없어서 억울함과 함께 도피정신까지 들 것 같다. 그리고 분노 단계 때는 누구에게든 걸렸다하면 불만과 분노를 터뜨릴 것 같고, 타협 단계로 가면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준비를 할 것 같다. 만약 사고사를 당하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면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 법칙이 성립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긴 생각 정리가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나의 죽음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아름다운 죽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내가 이룬 것들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행복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과제를 통해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의 폭이 조금은 더 넓어 진 듯하다. 그 무섭던 죽음이라는 단어를 나에게 적용해서 풀어쓰려하니. 웃기게도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게 되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다.